승가원의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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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3,116회
작성일 : 11-07-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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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동들 식사를 도와주고 있는 모습>
봉사활동이라는 말은 정말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말이다. 자발적으로 잘 하지 않기에 의무적인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가지만 가고 나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 봉사인 것 같다.
승가원을 가게 된 건 반장님 덕분이다. 사회복지사님이 종교를 물어보셨는데 나는 불교신자다. 불교 신자들은 표도 잘 안나고 예배나 행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 역시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 관악산 연주암에 몇 번 가고서 불교 신자라 한다. 아무튼 불교 신자라 사실 승가원이 더 좋기는 했다. 승가원이 장애아동 복지시설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별 마음의 준비 없이 가게 되었다.
<사진설명: 아동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
나는 비장애인이다. 장애인이라는 말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 내가 가진 편견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다. 친구중에 장애인이 있다. 그 친구는 아주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미국, 일본에서 수술도 받고 해서 초․중․고를 일반학교를 나왔고, 대학도 졸업했고, 개조한 차도 몰고 다니고 유학도 갔다왔다. 일반인과 비슷하게 생활은 하고 있다. 정확한 병명은 나도 잘 모르지만 근육병이라 원래 20세이상 못사는데 특이한 케이스로 진행이 아주 더디다고 한다. 그 친구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는데 정말 다행이다.
승가원 천사들도 내 친구처럼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더 비장애인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행복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 친구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저렇게 부자여도 장애가 있잖아..’ 하면서. 난 그 친구를 통해서 장애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장애 투성이인 인간이니까. 그래서 승가원 천사들을 보면 좀 다른 마음을 가질 줄 알았는데 아직 난 여전한 비장애인이었다.
<사진설명: 원내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
첫 날은 백련방에 많이 있어서 백련방 친구들 이름만 기억이 난다. 더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는데. 눈이 너무 예쁜 혜빈이, 의젓한 영우, 우유빛깔 준규, 장난꾸러기 태수, TV 애청자 미선이. 혜빈이는 음식을 잘 못삼켰다. 기침을 아주 괴롭게 했고 등을 세게 두드려서 가래를 뱉게 해줘야 했다. 내 친구도 척추 측만이 있는데 혜빈이, 미선이를 보면서 그 친구가 수술을 어릴 때 받지 못했다면 혜빈이나 미선이 처럼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친구가 가끔 하는 행동을 그 아이들이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씻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같다. 특히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면. 아이들은 내가 목욕을 시켜주는데 좋아하기도 했지만 괴로워 하기도 했다. 스스로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은 이 기분을 느껴주게 하고 싶다.
장애인 일수록 의사표시가 확실하다. 그러지 않으면 비장애인들은 알아주지 않기 때문일거다. 여기 아이들은 아이치고 의사표시가 확실했고 우두커니 서있는 어른들을 이끌어서 할 일을 지정해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같이 리더가 부재한 사회에서 오히려 이 곳 아이들이 더 리더답다.
<사진설명: 강당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회복지사님이 그러셨다. 봉사는 지속이다. 한 번의 강도 높은 봉사보다 지속적인 은근한 봉사가 더 필요하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대학다닐 때 농활을 4년동안 갔다. 갈 때마다 마을 어른들이 그러셨다. ‘내년에 또 오겠어?’ 대답을 못했다. 승가원 친구들한테 내가 ‘또 올게.’ 라는 말을 몇 번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오늘 좋은 날씨가 반갑고 친구들이 빨리 보고 싶다. 좀 이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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